이탈리아 마테라에서의 황홀한 시간

 

Italy — Matera, Basilicata

동굴 도시 마테라에서
우리 가족이 보낸 사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007 로케지. 수천 년 된 동굴이 미쉐린 다이닝이 되는 곳. 이탈리아 남부에서 가장 뜻밖의, 그래서 가장 오래 남은 여행지.

솔직히 말하면, 오는 길이 쉽지 않았다. 로마까지 13시간, 다시 국내선으로 1시간, 거기서 택시로 또 한 시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몸을 실었고, 택시 창밖으로 낯선 남부 이탈리아의 황량한 풍경이 흘러갔다. 짐을 끌며 마테라 골목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내가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이거였다.

"다시는 여기를 힘들어서 못 올 것 같으니, 이번에 흠뻑 즐기고 가야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집에 돌아온 뒤로 계속, 그것도 가장 짙게 떠오르는 여행지가 바로 이 마테라가 된 것이다.

3월의 마테라엔 관광객보다 로컬이 더 많았다. 남들이 잘 모르는 곳, 이탈리아 사람들이 조용히 찾는 곳. 회색빛 도는 베이지 석회암 건물들이 빼곡한 사시(Sassi) 지구는, 사진으로 볼 때는 단조로워 보이다가 직접 그 골목에 들어서면 전혀 다른 얼굴을 내민다. 멋대가리도 없을 것 같은 돌벽들이, 실제로 마주치면 왜 이렇게 로맨틱한지. 거칠고 오래된 암벽 사이사이로 모던한 대문 컬러가 불쑥 튀어나오고, 이름 모를 식물들이 돌 틈을 비집고 자라 있고. 동네 전체가 누군가 오랫동안 공들여 큐레이션한 전시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 깨끗하고 정결한데, 그 심플함이 오히려 압도적이었다.

우리는 사흘 내내 골목을 걷고 또 걸었다. 네비게이션 없이도 골목 구조를 다 파악할 수 있을 때까지. 밤에는 틴에이저 두 명을 혼자 내보내도 걱정 없을 만큼 조용하고 안전한 도시였다. 어둠 속에서 우리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한 손에 와인, 한 손에 젤라토를 들고 그 밤을 누볐다. 언덕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노을과 야경,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라이브 음악. 그 순간들은 사진이나 영상 따위에 담기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냥 나, 이태리 바이브. 그림은 나, 마테라.


잠드는 공간 자체가 경험이 된다

마테라의 숙소는 거의 전부 동굴을 개조한 곳들이다. 수천 년 된 암벽 그대로의 울퉁불퉁한 질감을 살린 채, 그 위에 모던한 가구들을 들여놓은 공간. 자연과 현대가 아무렇지 않게 공존하는 그 대비가, 보는 것만으로도 꽤 자극적이다. 비현실적인 공간 속에서 잠이 드는 경험은 마테라 여행의 일부다. 아이들도 체크인하자마자 방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반응만으로도 숙소 선택은 성공이었다.

그리고 그 미니멀리즘이 내 안에 오래 남았다. 집에 돌아와서 한참 동안 마테라 특유의 그 공간감에 빠져 지냈고, 결국은 집 인테리어까지 손을 댔다. 인생의 어느 시기엔 뭔가를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이 더 어렵고 더 용감한 일이 된다. 마테라는 그 진실을 돌벽 하나로 조용히 설명해버렸다.


마을 제일 높은 언덕, 비밀 기지 같은 카페

마돈나 델리드리스 바위 성당 근처, 골목을 한참 올라가야 나오는 지파 카페(Zipa Cafè). 처음엔 그냥 뷰 좋은 카페 정도로 생각하고 올라갔는데, 막상 테라스에 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마테라 사시 지구 전체가 발아래 펼쳐지는 그 전경은, 힘들게 올라온 수고를 단번에 보상해주는 종류의 것이었다.

젊고 힙한 바이브가 가득한 공간이다. 전 세계 여행자들의 웃음소리와 감각적인 음악이 섞여 활기차고 자유로운 분위기. 시그니처 칵테일도 있지만 신선하고 건강한 웰빙 음료들이 가득해 알코올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선택지가 풍성하다. 바삭한 브루스케타와 사이드 디쉬를 곁들이면, 마테라 전경을 바라보며 즐기는 훌륭한 런치가 완성된다. 오후 늦게 가면 붉게 물드는 노을까지 덤으로 얻는다.

Travel Tip 골목 오르막이 꽤 가파르다. 편한 신발은 마테라 여행 전반에 걸쳐 기본 중의 기본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곳마다 훌륭한 화보가 되는 곳이기도 하니, 배터리 충전도 잊지 말 것.

힙한 동굴 속, 온 가족이 말을 잃은 저녁

취향 까다로운 청소년 자녀들 입맛까지 동시에 사로잡는 식당을 찾는 일은, 여행 중 어지간히 피곤한 숙제다. 오이 마리(Oi Marì)는 그 숙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해줬다.

보통 동굴 식당이라고 하면 투박하거나 올드한 분위기를 상상하기 쉽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감탄이 나온다. 수천 년의 세월을 품은 거친 동굴 벽은 그대로 살려두고, 인테리어와 테이블 세팅은 놀라울 정도로 심플하고 미니멀하다. 절제된 조명이 동굴의 굴곡을 타고 흐르는 그 분위기가, 말 그대로 쿨(Cool) 그 자체다. 번잡하지 않고 차분한 공간 덕분에 오랜만에 아이들, 남편과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전통 이탈리아 남부 요리를 감각적이고 모던하게 풀어내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접시가 나올 때마다 미니멀한 예술 작품 하나가 서빙되는 느낌. 첫 입부터 마지막 디저트까지 모두가 대만족했다. 와인 셀러도 동굴 깊은 곳에 힙하게 자리 잡고 있어,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에도 구경거리가 넘쳤다.

마테라에서 격식 차린 파인 다이닝은 부담스럽고, 흔한 피자집은 아쉬울 때의 완벽한 선택. 인기가 많으니 저녁 예약은 며칠 전에 미리 해둘 것.

미쉐린 1스타, 여행의 정점을 찍는 저녁

마테라에서 처음으로 진짜 미쉐린 레스토랑에 갔다. 비탄토니오 롬바르도(Vitantonio Lombardo Ristorante). 사시 지구의 고대 동굴을 완벽하게 복원한 공간에 자리 잡은 곳이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달랐다. 거칠고 아늑한 동굴 벽이 자아내는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유리 너머로 오픈 키친의 셰프들이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마테라가 속한 바실리카타 지역의 깊은 전통 식재료를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 코스 요리들. 접시 하나하나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고, 인테리어와 서비스와 음식이 한 음절처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저녁이었다. 잊지 못할 경험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딱 맞는 경우가 드물다.


예상치 못한 하이킹도 했다. 유럽에서 만난 벚꽃이라니. 낯선 땅에서 마주친 익숙한 풍경은, 모국에 대한 그리움과 향기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마테라는 그런 식으로 자꾸 예상을 빗나갔다.

지금 내 삶의 어느 시기에 마테라를 만난 건 우연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자식에 대한 열망, 커리어에 대한 욕망, 식탐, 갖고 싶은 모든 것들을 조금씩 내려놓고 줄여가는 시기. 마테라의 미니멀리즘은 그 시기의 나에게 제대로 영감을 줬다. 덜어낼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오는 길이 쉽지 않아서 두 번은 못 올 것 같다고 했는데, 막상 짐 풀고 나니 그 확신이 흔들렸다. 마테라는 그런 곳이다. 오기 전까지는 망설이게 만들고, 다녀온 뒤에는 계속 생각나게 만드는.

비디오도 사진도 절반도 담지 못한다.
가서 몸으로 느껴야만 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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