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Bari 에서 예상 밖의 행복
Southern Italy · Bari
아무도 안 가는 도시,
Bari 에서 예상 밖의 행복
이탈리아 남부 여행 | 풀리아 주도, 아드리아해의 숨겨진 도시
솔직히 말하면, 바리는 계획에 없었다.
폴리냐노 아 마레에서 예약해 둔 숙소가 막판에 틀어지면서 급하게 대안을 찾다가 흘러든 도시.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거기 그냥 항구 도시 아니야?" 싶었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 이 도시,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거다.
마테라, 알베로벨로, 폴리냐노를 거치며 자연과 동굴과 절벽에 취해 있던 우리 가족에게, 바리는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났다. 오랜만의 도심. 사람 냄새. 거리의 활기.
Where to Stay
숙소 실패가 선물한 최고의 선택
이번 바리 숙소는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미리 예약해 둔 B&B가 있었는데, 막상 도착해 문을 열어보니 사진과는 영 딴판이었다. 협소하고 답답한 공간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며칠을 버티는 건 무리였다. 짐을 풀기도 전에 짐을 다시 쌌다.
그 자리에서 구글로 검색해 예약한 곳이 — 결과적으로 이번 이탈리아 여행 숙소 중 단연 최고였다. 도심 쇼핑 거리 한복판에 위치한 아파트 스타일의 숙소로, 1,000 스퀘어 피트(약 93㎡)가 넘는 단층 구조에 환경까지 좋았다. 주요 관광지는 모두 도보로 이동 가능했고, 주변으로 쇼핑할 거리도 즐비했다. 거리가 없어서 지루할 틈이 없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What to Eat
바다가 접시 위로 올라오는 도시
바리는 먹는 도시다.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는 풀리아 주의 주도답게, 해산물 요리 하나하나에 바다의 기억이 담겨 있다. 관광지 레스토랑이라고 봐도 무방한 곳에서도 재료가 살아 있었다. 바리 먹거리를 빼고 이 도시를 말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번 여행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맛들을 꼽자면:
바리에서 꼭 먹어야 할 것들
파니노 콜 폴포 (Panino col Polpo) — 문어 샌드위치. 바리를 대표하는 스트리트 푸드로, 그릴에 구운 문어를 빵에 넣고 올리브오일을 살짝 두른 것뿐인데 이게 정말 맛있다. 복잡한 게 없어서 오히려 바다 맛이 그대로 살아있다.
해산물 랍스터 파스타 — 풀리아의 해산물 파스타는 소스에 힘이 있다. 랍스터의 단맛과 토마토 베이스가 만나는 조합은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남부의 맛.
문어 샐러드 — 담백하게 삶아낸 문어에 레몬과 파슬리. 심플하지만 재료의 퀄리티가 전부인 요리. 문어가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다는 걸 바리에서 처음 알았다.
홍합 토마토 소스 — 우리말로 하면 '홍합 토마토 찜' 정도인데, 여기선 완전히 다른 음식처럼 느껴진다. 바다 향이 살아있는 국물이 맛있어서 빵 찍어 먹으면 끝도 없다.
오레키에테 (Orecchiette) — "작은 귀"라는 뜻의 바리 대표 파스타. 직접 만들어 파는 노나(할머니)들의 골목 '스트라다 델레 오레키에테(Strada delle Orecchiette)'에서 건파스타를 사 오는 것도 추천. 바리 베키아 구시가지 아르코 바소 골목에 가면 여전히 할머니들이 집 앞에서 손으로 만든 파스타를 말려 팔고 있다.
우리가 간 레스토랑은 Mastro Ciccio,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해산물 전문점이다. 문어 샌드위치와 함께 먹은 문어 샐러드, 해물 파스타가 모두 수준급이었다. 예약 없이 들어간 곳인데 퀄리티로 치면 손에 꼽는 식사였다.
What to See
성 안으로 들어가는 오후
바리는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뉜다. 중세 골목이 미로처럼 얽힌 구시가지 '바리 베키아(Bari Vecchia)'와, 19세기에 정비된 신시가지 '쿼르티에레 무라트(Quartiere Murat)'. 숙소가 쇼핑 거리 한복판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두 지역을 모두 도보로 오갔다.
바리의 주요 볼거리
카스텔로 스바보 (Castello Svevo) — 12세기 노르만 시대에 세워진 성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증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내부 전시도 있고, 성 자체의 규모와 구조가 볼 만하다. 딸아이와 함께 들어가 구경했는데 스케일에 깜짝 놀랐다.
산 니콜라 성당 (Basilica di San Nicola) — 산타클로스의 모티프가 된 성 니콜라스의 유해가 안치된 성당. 외관은 단단하고 장중하며, 내부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절제미가 있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 건축으로도 충분히 인상적.
스트라다 델레 오레키에테 (Strada delle Orecchiette) — 구시가지 골목 안에 있는 '파스타 골목'. 할머니들이 집 앞에 나와 손으로 오레키에테 파스타를 빚어 팔고 있다. 오전에 가는 게 좋고, 건파스타를 사 오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기념이 된다.
룽고마레 (Lungomare di Bari) — 바리 해변 산책로. 저녁 무렵 가족과 함께 걷기 좋다. 현지인들의 저녁 조깅과 아이스크림 가게, 바다 냄새가 섞여 있다.
딸아이가 이탈리아 스타일 옷 쇼핑을 하고 싶다고 했던 날 오후, 우리는 성을 구경하고 나서 신시가지 거리를 쭉 걸었다. 이탈리아 현지 브랜드 숍들이 즐비하고,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스타일의 옷들이 넘쳐났다. 아이는 신났고, 나는 아이가 신난 걸 보며 신났다. 여행이란 원래 그런 거다.
Final Thoughts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 좋았던
바리는 흔히 "그냥 지나치는 도시"로 여겨진다. 나폴리도 아니고, 로마도 아니고, 알베로벨로처럼 포토제닉하지도 않다. 그래서 여행 일정에 넣지 않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게 바리의 매력이기도 하다. 관광객 때문에 원형이 훼손되지 않은 도시. 현지인들이 실제로 살고 먹고 움직이는 도시. 구시가지 골목에서 파스타를 빚는 할머니도, 항구 주변 좌판에서 문어를 굽는 청년도, 쇼핑 거리를 활보하는 10대들도 — 그냥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가족에게 바리는 그래서 특별했다. 예정에 없었지만 와보길 잘했다. 자연 경관에 취해 있던 눈에 도시의 생기가 새로운 자극이 됐다. 이탈리아 남부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바리는 꼭 하루 이상의 여유를 두고 넣어볼 것을 권한다.
이 글이 이탈리아 남부 여행을 준비 중인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 편은 이 여정의 마지막 도시, 로마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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