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풀리냐노 해변 도시
기대와 조금 달랐던,
그래서 더 기억나는 곳
Polignano a Mare
아, 여름에 왔어야 했는데
솔직히 말할게요. 처음 도착했을 때 든 생각이 그거였어요.
"아 — 여름에 왔어야 했는데."
머릿속에 그려왔던 장면이 있잖아요.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에메랄드빛 바다, 골목마다 흘러나오는 음악, 해변을 가득 채운 사람들, 피부에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늘어지게 즐기는 그 느낌. 인스타그램에서 수백 번 봤던 그 풀리냐노. 그런데 3월의 풀리냐노 아 마레는 — 고요했어요. 조용하다 못해 한산했고, 해변은 텅 비어있었고,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은 물론 없었죠.
그 말이 맞긴 한데 — 그래도 괜찮았어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꽤 좋았어요. 조용하고 고즈넉한 걸 좋아하는 우리 가족한테는 오히려 딱이었거든요. 마치 마을 전체를 전세 낸 것처럼, 골목 구석구석을 우리끼리 누비고 다녔으니까요.
아침을 파는 카페가 없다니요
여행지에서 아침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들 알잖아요. 눈 뜨자마자 "오늘 아침은 뭐 먹지?" 하는 설렘. 그런데 풀리냐노는 저한테 그 설렘을 살짝 배신했어요.
골목을 돌아다니며 아침을 찾아다녔는데, 동네 카페들은 다 있었어요 — 로컬 에스프레소 바들이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동네 아저씨처럼 반갑게 맞아주고,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 뚝딱 내어주는 그 정감 있는 곳들이요. 근처 테이블에 앉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현지 분위기 한껏 느낄 수 있어서 좋았는데 — 문제는 먹을 것이었어요.
메뉴를 보면 크루아상이 전부예요. 크루아상. 하나. 끝.
우린 배고픈 배를 달래며 걸었어요. 걷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골목이 워낙 예쁘니까 배가 고파도 발이 멈춰지질 않더라고요. 어쩌면 그게 풀리냐노의 전략이었는지도 몰라요.
Pescaria — 굴이 이렇게 맛있었던 적이 있었나
배고픔이 정점에 달했을 때, 구글 리뷰를 믿어보기로 했어요. 그렇게 찾아 들어간 곳이 Pescaria.
문을 열고 들어서니까 이미 사람이 가득이에요. 평일 저녁이었는데도요. 3월 비수기임을 감안하면 이 동네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라는 증거겠죠. 분위기는 고급 레스토랑과는 거리가 멀어요 — 활기차고, 시끄럽고, 냄새도 나고 (좋은 의미로요), 테이블 사이 간격도 좁고. 그냥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맛있는 걸 먹는 곳이에요. 저 좋아하는 분위기예요.
주문한 건 생굴, 해산물 브루스케타, 파스타. 나오는 순서대로 먹기 시작했는데, 생굴 첫 점에서 눈이 커졌어요.
연어 브루스케타는 바삭하게 구운 빵 위에 재료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데, 한 입 베어물면 식감과 맛이 동시에 터지는 느낌. 파스타는 단순해 보이지만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어서 끝까지 깨끗하게 비웠어요.
참고로, 알고 보니 tvN 《텐트 밖은 유럽 — 로맨틱 이탈리아》에 나왔던 곳이기도 해요. 방송에 나왔다는 걸 먹고 나서 알았는데, 어쩐지 괜히 더 뿌듯했어요.
걷다 지치면 먹고, 먹다 힘들면 또 걷고
풀리냐노에서의 시간은 대부분 그냥 — 걸었어요. 계획 없이, 즉흥으로. 해안가를 따라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절벽 아래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지고, 올려다보면 하얀 집들이 아슬아슬하게 절벽 위에 걸쳐 있어요. 수영은 못 해도 이 풍경만으로도 충분했어요.
골목 사이사이에는 작은 상점들이 숨어있어요. 큰 기대 없이 들어갔다가 예상치 못한 것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솔솔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양복집에서 — 진짜 뜻밖의 득템을 했어요.
슬림한 체형의 우리 아들, 미국에서는 핏 맞는 양복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예요. 기장은 길고 어깨는 헐렁하고. 그런데 풀리냐노 골목 안쪽에서 우연히 들어간 작은 양복집에서 딱 맞는 걸 찾았어요. 맞춤복처럼 핏이 완벽했고, 가격도 미국보다 훨씬 합리적이었어요. 그 양복, 나중에 중학교 졸업식 날 입었는데 — 정말 잘 어울렸답니다.
가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골목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잡지 표지예요. 하얀 벽, 파란 창문, 좁은 계단 — 어디서 찍어도 인생샷이 나와요. 카메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한나절이 훌쩍 가요. 사진 많이 찍어두세요, 진심으로.
그리고 — 바닷가라고 따뜻할 거라는 착각은 금물. 3월에는 바람이 제법 세고 찹니다. 따뜻한 재킷은 필수예요. 저는 두꺼운 스카프도 가져갔는데, 목이 시리거나 바람이 거셀 때 머리에 두르기도 하고 정말 요긴하게 썼어요. 여성분들은 스카프 꼭 챙겨가세요 — 추위도 막아주고, 사진 찍을 때도 포인트가 되어줘요.
· 성수기(여름): 페스티벌 분위기, 해수욕 가능, 활기찬 바이브
· 아침식사: 동네 에스프레소 바 + 크루아상이 기본, 브런치 기대는 금물
· 필수템: 따뜻한 재킷 + 스카프 (3월 기준)
· 쇼핑: 해안가 근처 소규모 상점들 구경 재밌어요. 이탈리아 슈트도 강추
· 사진: 골목 어디서나 인생샷 가능 — 카메라 메모리 넉넉히 준비하세요
기대했던 모습과 달랐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곳이 있잖아요. 풀리냐노 아 마레가 저한테는 그런 곳이에요. 여름에 다시 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아직도 가끔 해요. 그때는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들어보고 싶어요 — 용기가 생기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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